fantastical

丧失和希望的交叉
代表着这个时代中既是主体又是客体的人们。

洪京汉(美术评论家)

薛辉的近期作品包含着自己与他人的生存故事,但是却除去了固有的性格特征从而教人们关注内在的重要性而非外在。这点十分令人印象深刻。他把已经固定于所有人们意识之中熟悉的沉默,用视觉语言来表现、传达,才能够把本应传达却无法做到、无法被收容的那些东西吟诵出来的这一点也值得深思。薛辉试图从尚未发现的感性中揭露人们被生活所覆盖的问题意识。 这一点也是他的作品独有的魅力。
他的作品不仅展示出被揭开的事物表象以及多样的人与物,还坚持展现出了人们共享并独占感情的姿态。这已经成为了薛辉独特的作画方式,并可能激发新的实验性做法。作品里多样且隐秘的记号虽然模糊,却能从奇妙的造型和神秘的象征里得到确认。

他的图像是用空间与时间、记忆、感性、里与外、人生与社会、人类与历史、现象与事物具现化的。也就是说,他的空间是一个无法容纳话语的语言彼方的世界,同时也是个与现实脱节的场所。这是个令人失语的空间,也是个每当人们试图说出那些没说出口的,无法说出口的,亦或是不言自明的话语时都会感到失落与空虚的感性空间。但更有趣的是,他的空间并没有放弃对人类的探索,劝导以及希望。如同画面中被展示出的暴露与隐藏的两面性一样,在我们讲述着人间的温暖与希望的同时,也无法否认人类存在本质当中的不完整性与不安。用德国哲学家恩斯特•布洛赫(Ernst Bloch)的话来说他的作品当中的希望是一个“尚未意识”的存在,是想要在未完成当中完成自己本质的存在。这就是作者想要表达的。

薛辉在2015年之后的作品《感情的假面》当中强调了人类存在当中必然的双重性,以及挫折与希望的两面性。人类在戴着假面的人格与感性之间徘徊的同时也在让那副假面吞噬自己原本的感性,这两种现象是自然地同时存在的。

薛辉的近期作品<生存者>、<雪人>、<龙套的8号感性>等等虽然展示了现代人不安且不完整的生活,但紧贴着地平线生长的理想化植物,象征着梦想与欲望的疏通在高空中翱翔的滑翔伞,雪花,云朵,这些充满希望与浪漫的象征也并没有被完全消除。但另一面他的画也在展现着固化的社会体系。(演员一般)站着的一列列人群,黑白色的匿名人物,红色的<生存者>们,他们的身躯痛苦地承载着教人们为了生存而互相伤害的残酷社会,失去了个性一味随波逐流的现代人的生活,以及活在僵化的体系之中不知去向行尸走肉的人类现状。人们在失望里寻找希望,缅怀着遗失的感性。如果能够去探究用视觉建筑和现代人的生活组成的薛辉眼中的生命,我们便能更好地明白作品的价值以及传达的讯息。

상실과 희망의 교차_
주체이면서 타자이기도 한 동시대인을 말하다

홍경한(洪京漢, 미술평론가)

현재를 고찰하고, 미술의 존재가치가 법과 규율 못지않게 사회적으로 유용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미술이 그것의 진정한 회복에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 할 때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하는 작가의 행동은 매력적이다. 예술이 단지 취향공동체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 미래를 위한 유용한 도구로써 혹은 현대사회에서 ‘미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민을 담보하는 것이라면 그만큼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상황들, 밝거나 어두운 현상들을 시각언어로 구체화함으로써 동 시대성에 접근하고 있는 작가 설휘의 작업은 눈 여겨 볼 만하다. 거리를 둔 듯 가까운 자리에서 현대사회의 이면과 이중성, 빛과 어둠, 사회적 동일성의 구성과 해체, 의미의 재구성과 탈 영토화 등이 담긴 메시지를 화면에 담담히 옮겨내고 있다는 사실에서 하나의 예술적 가치를 상정시킨다. 그리고 이는 그동안의 화력画历을 통해 일관성,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설휘의 작품은 어쩌면 화사(畵史)의 과정 중 또 하나의 과정을 지나고 있다 해도 무리는 없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린 작가가 지향하는 언어와 특징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우선 그의 근작들은 나와 타인이 결합된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고유한 성격을 나타내는 특징을 거세함으로써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중요성을 말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이미 저장되거나 공히 익숙한 침묵을 시각언어로 재생산하여 전달해야 할 것임에도 전달되지 못하는 것들, 받아들여야 하나 수용되지 못할 것들에 대한 것들에 대해 읊조리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측면이다, 특히 발견되지 못한 자신의 감성을 재발견하려는 시도를 통해 삶의 지층에 의해 덮인 우리 내부의 여러 문제의식을 표출시키는 시도를 읽을 수 있다는 점 역시 그의 그림에서 찾을 수 있는 매력으로 손색이 없다.

물론 작가의 작품에선 드러난 것, 다양한 사물과 대상으로부터 인지되는 것과는 달리 감정을 공유하고 사유할 수 있는 매개로써의 조형성을 견지해왔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그것은 설휘 작업의 변별력으로 굳어지고, 회화를 넘어 새로운 실험적인 작업으로 발화되기도 한다. 이는 흡사 정통적인 통사법의 구사와 불완전한 구문처리, 똑떨어지는 지시어를 통한 명료한 기호들로 가득해 변별력을 가중시키는 문학적 관점까지 포괄한다. 그리고 이 포괄성과 암시적 기호들은 모호하지만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여러 조형적요소들(화면을 가득 채운 사선과 사라짐을 상징하는 여러 자연물, 개성을 상실한 인물들, 나열된 채 흑백으로 처리된 사람 등), 비의적인 상징으로 환원되는 이미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이미지들은 그의 작품에서 단순한 인식 이외의 정신적 흐름을 느끼도록 하는 촉매로 작동하고, 이성적 회전속도에 비해 감정의 여울이 더욱 깊게 회동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의 이미지는 공간과 시간-기억-감성-안과 밖-삶과 사회-인간과 역사-현상과 사물과 같은 여러 기의에 의해 구현된다. 특히 공간은 그의 작품에서 적절한 예술문장의 집합소와 같다. 즉, 그에게 공간이란 화자의 말참견이 좌절되는 언어 저편의 세계이면서 실제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이 공간은 화자의 실어증을 불러오는 장소이자 말할 수 없는 것 / 말하지 않아도 알거나 알 수 있게 되는 것 / 말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만 매번 절망과 허무에 부딪히는 감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의 공간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 및 권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면에서의 드러남과 감춰짐의 이중성처럼 어느 한편에선 반드시 긍정적인 삶의 온기와 희망을 언급하는데, 우리에게 놓인 현실과 인간 존재성이라는 것 자체가 꽤나 불완전하고 불안한 본질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를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의 표현을 빌려 재구성하자면 그의 작품에서 희망이란 ‘아직 아닌 존재’의 존재론과 연관되며,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써 자신의 모든 본질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와 같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도 이와 맞닿는다.

이와 같은 해석은 근작들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우선 작가는 2015년 이후 발표한 <페르소나의 감성>에서 존재론적, 필연적 이중성, 좌절과 희망의 양면성을 강하게 언급한다. 즉, 동시대 인간은 가면을 쓴 인격과 감성 사이를 활보하며 인간의 감성 또한 가면을 쓴 인격으로 대체된 채 원래의 감성을 귀납시키려는 자연스런 움직임이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라캉(Jacques Lacan)의 발언으로 말하자면 주체와 대타자 사이의 관계로써의 불안에 기인하고, 상징의 거세를 통해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과 연계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현상적으로 자리하는 것이 페르소나이다. 문제는 대타자 자체도 비일관적이며 분열되어 있다는 점인데, 작가는 이를 감성의 본질에서 해답을 찾는다.

설휘의 근작 <서바이벌 맨>, <스노우 맨>, <엑스트라 8의 감성>과 같은 작품들은 현대인들의 불안과 불완전한 현재를 목도하도록 하지만 그림 속 여러 장치들, 다시 말해 이상성을 지정하듯 지평선과 맞닿은 채 산발하는 식물들, 꿈과 욕망-소통을 상징하듯 하늘 높이 날아가는 패러글라이딩이나 눈과 구름 등의 희망적이고 낭만적인 상징들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는다. 반면 제도화된 체제를 열람하게 하듯 일렬로 서 있는 군상들(마치 배우 같은), 그 무리 중에서 유독 흑백으로 처리된 익명의 인물, 붉은 색으로 그려진 <서바이벌 맨> 등은 내가 살기 위해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잔혹한 사회, 개성을 상실한 채 순응적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 고착된 구조(시스템)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좀비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담아낸다. 이는 곧 상실 속에서 찾는 희망을, 잃어버린 감성에 대한 고뇌를 말함이다.

이와 같은 장면들은 설휘의 과거 작품 대비 비교적 직접적이지만 사실상 개념적으로 접근할 때 보다 수월한 독해가 가능한 아이러니를 지닌다. 그것은 마치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복잡한 사선이 관계망과 자유로움의 갈망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처럼 분명 “침묵으로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들과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는, 하나의 층위에서 유동한 채 존재 너머의 존재 혹은 비 존재를 통해 지상적인 어떤 형상과의 결합 속에서 위치시키는 그만의 방식”을 앞서 이해해야 함과 갈음된다.

설휘의 근작들은 미적 결과보다 미적 태도가 형식이 될 때 보다 실체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즉,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고, 알거나 알게 되는 과정에서 머리보다 가슴이 앞설 때 자연스럽게 공감이 생성되 듯 설휘의 작품들에서도 개별적 분석보다 전체적인 맥락을 보는 것, 2005-2006년 이후 지금까지의 과정을 고찰하는 것에서 그의 작품에 내재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파악해야 비로소 시공의 테를 덧댐으로써 공유되는 소리들을 경청할 수 있고, 시각적 범주에서 이탈해 미학적, 철학적 쓰기와 읽기에 방점을 두고 있는 작가의 미적태도가 어떻게 감각적으로 개척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시각의 건축학으로 이어지는 기억술에 동시대성이라는 산책을 더하고 있는 작가의 삶을 탐구할 수 있다면 보다 명료해지는 그의 조형언어와 가치 역시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Sentimental Scenery

어린시절 이불이나 천 조각들을 이어붙여 천막으로 된 공간을 만들고 허물기를 반복했다. 이 비밀공간은 작은 손길에 바로 허물어질 정도로 부실하기도 했지만 이리저리 이어붙이면 확대, 변형될 수 있는 창조적 공간이자 나만의 아지트였다.

덧붙이고 조합하는 과정은 본인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수 많은 이미지와 감정, 기억의 파편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가장(假裝)의 공간]시리즈는 이렇게 이상과 현실의 조각들이 조합되면서 일어나는 일종의 해프닝을 그렸다. 분열과 조합을 반복하는 화면은 그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가 발생하는 심리적 공간이었다. 가장의 공간시리즈에서는 공간에 집중한 작업을 했다면 근작에서는 좀더 인물간의 괌계과 심리에 주목했다.
이번 전시에 모티브가 된 작업은 유년의 기억을 그린 [기억의 징후](2014)와 북아현동 골목에 나와있는 의자를 그린 [platform](2016)이다. 이전의 작업은 의인화를 통한 상황을 묘사와 공간의 표현에 주력했다면 근작들은 현재의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기억의 징후]는 우연히 발견한 사진 한 장에서 출발했다. 사진은 과거를 담지만 그 사진이 존재하는 현재에 의해 재해석의 과정을 거친다. 같은 사건이라도 기억은 현재에 의해 왜곡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 사진에는 세명의 어린아이가 등장하는데 다른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이다운모습을 하고있다면 이 인물들은 다소 딱딱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기억과 환상, 미묘한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platform]은 북아현동 골목의 의자들을 그렸다. 북아현동은 재개발지역으로 아파트가 들어서는 와중에 작은 집들이 옹기 종이 모여있는 동네이다. 골목의 의자는 근처에 사는 노인들이 각자 집에서 의자를 하나씩 들고 나와 마련한 일종의 사랑방이다. 가지각색의 의자가 자리하고 있는데, 주인이 없이 자리하고 있음에도 서로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 했다. 바삐지나가는 현재와 달리(혹은 그 시간을 소진하고 난 이후) 골목에 자리한 이 공간은 굉장히 정적이면서도 실용적으로 다가왔다. 노인들은 아침이면 삼삼오오 나와 시간을 보내다가 해질녘이면 집에 들어가는데, 재개발지역인 북아현동의 공간적성, 시간의 빠름과 느림사이의 어느 시점에 있는 몽환적 풍경으로 다가왔다. 골목 의자를 그린 것은 [바람 바람]이 시작이다. 골목에 버려져있는 사무용 의자가 있었는데, 낡은 의자는 누군가의 흔적을 머금은채 버려져 있었다. 골목으로 나와 있는 낡은 의자의 모습에서 존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이 사라진 부재(不在)의 공간은 관찰자의 심리에 의해 더욱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느닷없이 접한 이미지가 기억이나 감정 과 결합할 때 완벽한 심리적 화면이 완성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양한 시점에서 다양한 관계에 대해 표한하고자 하였다. 고요와 불안, 화려함과 한적함, 환상과 실재의 경계에서 존재하는 존재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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