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love of God”–God`s Sign
신의 사랑을 위하여 – 신의계시
NAMHO KIM (김남호)

신의 사랑을 위하여 120x120 A2

For the love of God 1,120x120cm, Mixed Media on Canvas,2016

오픈닝: 2016.06.18(토)PM 3:30
전시기간: 2016.06.18(토)~ 2016.07.15(금)
전시장소: 갤러리 윤아르떼 상하이
전시시간: 9:00am~6:00pm
큐레이터: 양설염

1. 전시 개요

윤아르떼, 한국 작가 김남호 초대전 “God’s Sign (신의 계시)
윤아르떼는 오는 6월 18일(토) 오후 3시, 한국 중견 화가 김남호 초대전 오프닝을 할 예정이다. 전시는 7월 15일(금)까지 28일간 진행된다. 전시를 기획한 박상윤 대표에 따르면, 김남호 작품은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전시 기간 동안 윤아르떼는 영혼의 갤러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호 초대전은 ‘God’s Sign (신의 계시)”라는 타이틀 아래 ‘생명의 나무, 생명의 문, 신의 사랑을 위하여, 사랑의 기쁨, 신의 사랑, 신의 축복, 신의 빛, 신의 생명, 신의 음성, 신의 노래’ 등의 이름을 가진 작품들이 전시된다. 전시 작품들은 두 종류로 분류해볼 수 있다. 아름다운 색들이 서로에게 스미듯 번지고 겹치면서 영적이고 미학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 작품들과 단색화로 보이는 명상적 세계를 암시하는 작품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여러 가지 색들은 사실 다양한 빛에 대한 은유이다. 우리 안에는 감당하기에 버거운 다양한 감정들이 있다. 그러한 감정 하나하나에 대응하여 신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가 슬플 때, 외로울 때, 아플 때, 용기를 잃었을 때, 불안할 때, 신은 우리의 특정한 감정을 치유하기 위해 맞춤 사랑을 베풀 것이다. 작가의 여러 색깔은 결국은 여러 빛으로 은유된 신의 사랑이다. 그 사랑들이 겹치고 서로에게 스미듯 이웃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관람자는 치유를 받는다. 또한, 신이 우리를 사랑하듯 나도 누군가에게 맞춤의 사랑을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것, 사랑은 서로에게 겹치듯 스미듯 가까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 한 부류의 작품은 색면 추상화 혹은 단색화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멀리에서 바라볼 때 그렇다. 관람자가 좀 더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면 작품의 바탕에서 어떤 형태가 말을 걸기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중적 구조라고 볼 수 있다. 관람자에게 명상을 일으키는 단색화 같은 색면추상 안에 감추어져 얼핏 실루엣만 보이는 것은 신의 사랑이며, 신의 축복이며, 신의 빛이며, 신의 생명이며, 신의 음성이며, 신의 노래이다.

김남호 작품은 빛이 없는 공간에서도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관람자에게 미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면서 깊은 명상과 함께 영적인 치유를 통하여 신과 만날 수 있게 하는 김남호 작품은 분명 독창적이며 오래 두고 볼수록 깊어지는 맛이 있다. 빛이 없는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작품을 하는 작가는 신은 우리를 낮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밤에도 사랑한다는, 즉 신은 시간을 구분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작가가 신이라는 주제에 집중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개인사적인 차원에서 사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늘 타자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의 차원으로 자신의 사유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하여 타인을 위해, 이웃을 위해, 인류를 위해 기도하는 것, 예술가로서 산다는 것은 그런 운명이다.

2. 전시 서문

김남호 작품전 God’s Sign – 박상윤

예술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대답이 있을 수 있으나 김남호 작품은 우리에게 알랭드 보퉁의 저서 “영혼의 미술관”이라는 책 이름을 떠오르게 한다. 김남호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은 틀림없이 영혼의 미술관이라 불릴 만 하며 갤러리에서 전시한다면 영혼의 갤러리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존재는 누구도 완벽하게 행복할 수 없다. 완벽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들의 생각이란 연약하여 자주 흔들린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란 또 어떤가.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내일을 기대하지만, 내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똑바로 앞을 향하여 걷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서 자주 뭔가에 걸려 넘어진다. 걷다 보면 엉뚱한 길에 들어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좀 더 나은 길로 들어서고 싶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항상 맑은 날만 있기를 소망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자주 비에 젖는다. 우리 마음에는 습한 그늘이 들어서 있기도 하다. 마음이 온통 어둠인 사람들도 적지 않다. 누구는 자신이 아프다고 말하고 누구는 자신에겐 치유하기 힘든 상처가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한다.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기도 힘들어 더욱 힘들 때도 있다고 한다. 외로움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적지 않다.

요즘은 치유 혹은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힐링이란 단어가 여기저기 붙는다. 힐링 여행, 힐링 음악, 힐링 글쓰기, 힐링 미술, 힐링 먹거리 등등, 이렇게 힐링이라는 단어가 모든 영역에서 언급되는 이유는 그만큼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 존재들에게 힐링, 즉 치유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남호 작품으로부터 우리는 영혼의 치유 기능을 읽어낼 수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관람자인 나 자신부터 영적인 치유를 받게 된다. 그가 이번에 윤아르떼에서 전시하는 개인전의 타이틀은 ‘God’s Sign”이다. 신의 메시지 혹은 신의 계시라고 번역해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생명의 나무, 생명의 문, 신의 사랑을 위하여, 사랑의 기쁨, 신의 사랑, 신의 축복, 신의 빛, 신의 생명, 신의 음성, 신의 노래’ 등의 이름을 가진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외견상으로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해볼 수 있다. 무지개와 같은 여러 아름다운 색들이 서로에게 스미듯 번지고 겹치면서 영적이면서 미학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 작품들과 얼핏 무심하게 보면 단색화로 보이는 명상적 세계를 암시하는 작품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작가가 그린 여러 가지 색들은 사실 다양한 빛에 대한 은유이다. 이 빛들을 그릴 때 작가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우러러보고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하고 있던 작은 시공간으로부터 우주 전체를 관조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주 넘어 또 다른 우주, 그 모든 우주까지 아우르는 전체 우주를 상상하면서 우주론이나 양자물리학과 같은 우주의 신비를 밝혀내려는 과학으로도 증명해낼 수 없는 신의 존재를 묵상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몸을 이루고 있는 살과 뼈, 그 속에 있는 세포와 또한 그 세포의 가장 작은 단위인 미립자를 생각하며, 그 알 수 없는 미시 세계의 우물로부터 우주가 탄생하던 최초의 그 시점으로 거슬러 생각하며 자신의 존재 기원을 생각했을 것이다.

작가나 그의 작품을 관람하는 우리나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고 사람들 관계 속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원치 않는 상황이나 감정 때문에 아파한다. 이렇게 살면서 우리는 가끔 진지해질 때가 있다. 왜 이렇게 사는지,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묻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다만, 예술가는 일반적인 우리보다 자주 혹는 늘 이런 주제를 생각한다는 것이 다르다. 김남호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삶의 감정에 지쳐 방향을 잃기 쉬운 일상 속에서 문득 우리의 존재의 근원과 대면하게 된다. 그의 작품에서 여러 색, 즉 여러 빛은 겹치며 서로에게 스미듯 하고 있다. 우리 인간들은 빛의 색을 다양하게 인지할  수 없다. 이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일 것이지만, 다행히도 작가의 표현을 통하여 우리는 다양한 빛들이 결국은 인간 존재에게 사랑을 일깨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안에는 감당하기에 버거운 다양한 감정들이 있다. 그러한 우리의 감정 하나하나에 대응하는 신의 사랑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슬플 때, 외로울 때, 아플 때, 용기를 잃었을 때, 불안할 때, 신은 우리의 특정한 감정에 맞는 맞춤 사랑을 베풀 것이다. 작가의 여러 색깔은 결국은 여러 빛으로 은유된 신의 사랑일 것이다. 그 사랑들이 겹치고 서로에게 스미듯 이웃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또 다른 깨달음도 얻게 된다. 신이 우리를 사랑하듯 나도 누군가에게 맞춤의 사랑을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것, 사랑은 서로에게 겹치듯 스미듯 가까이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여러 빛깔 위에 가운데가 비어 있는 원형과 직선으로 그은 면들로 뭔가 메시지를 보충하고 있다. 아마 신의 말씀을 기호화한 것이라 해석해볼 수 있다. 도형들은 어쩌면 양자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미립자들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전자들은 특정한 위치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소위 불확정성이란 양식으로 동시에 여러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미립자들은 계속 파동하고 있다고 한다. 미립자부터 인간, 사물, 자연, 심지어 우주까지도 양자물리학적인 세계에서는 파동 중이며, 오직 누군가의 관찰이나 관찰하는 마음을 통해서만 파동함수가 무너지고 특정한 모습이 된다고 한다. 그러한 관찰을 누가 하고 그러한 마음을 누가 가지는가? 미립자부터 우주 안의 모든 만물이 우리가 보는 모습대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의 관찰이나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 양자물리학의 개념이다. 그런데 우리를 사람이게 하는 것은 결국 최종적으로 신의 관찰과 신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작가의 작품에서 기호화된 원형은 신의 관찰 때문에 파동을 멈춘 인간일 수도 있고, 직선으로 된 면들은 미립자와 미립자가 파동으로 연결되듯 인간과 인간이 연결된 모습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이런저런 감정들에 시달릴 때 신은 그에 맞는 빛으로 우리를 감싸 안으며 우리에게 그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서로 스미듯 겹치듯 사랑하라, 서로가 연결되어라. 연결되면 생명의 나무도 키워낼 수 있고 더 큰 사랑이 될 수도 있다.

흔히 말하길 회화는 2차원 평면에 3차원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입체파 작품의 경우는 동서남북 위아래에서 동시에 바라본 모습을 그렸다고 해서 4차원의 세계를 2차원 평면에 그렸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한편 김남호 작품은 어떤가? 우리가 알고 있는 3차원이나 4차원 정도를 2차원 평면에 그린 것이 아니다. 신의 세계는 몇차원의 세계일까?

김남호의 이번 작품 중 또 한 부류의 작품은 색면 추상화 혹은 단색화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멀리에서 바라볼 때 그렇다. 관람자가 좀 더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면 작품의 바탕에서 어떤 형태가 말을 걸기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중적 구조라고 볼 수 있다. 뒤에서 보충하겠지만, 사실은 다중적 구조하고 해야 옳다. 많은 사람이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화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그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은 말 그대로 영혼의 미술관이 되는 셈이다. 관람자는 그의 작품 앞에서 자신의 영혼을 어루만진다. 이미 작고한 작가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많은 영혼을 치유하고 있다. 마크 로스코 자신은 자신의 영혼과 끝없이 내적인 영적 대화를 나누면서 작품을 했을 것이다. 최근에 인기가 높은 한국의 단색화 역시 작가들이 고도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 상태에서 절제된 표현으로 그려낸 작품들일 것이다. 김남호 역시 초집중했다. 주목할 것은 김남호가 집중한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존재하게 한 근원에 대한 집중이다. 신에 대한 집중을 하다 보니 자신을 망각해버리는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자신이 신의 사랑 안에 이미 거하게 되었으면서도 그 자체도 잊은 채 작품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그가 그린 것인지 신이 그를 통하여 그린 것인지 경계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울컥하는 감동을 주는 원인이다. 관람자에게 명상을 일으키는 단색화 같은 색면추상 안에 감추어져 얼핏 실루엣만 보이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신의 사랑이며, 신의 축복이며, 신의 빛이며, 신의 생명이며, 신의 음성이며, 신의 노래이다. 가까이에서 작품을 오래 바라보면 보인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다면? 방안의 불을 끄고 보면 된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면  당신이 김남호의 작품을 어느 정도 감상했다 싶으면 알아서 불을 꺼줄 것이다. 아니면 당신이 실내의 불을 전부 끄고 빛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작품을 보기 바란다. 무엇이 보일 것이다. 작품의 바탕에서 신의 메시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작품마다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신의 메시지는 다양하다. 사랑, 축복, 빛, 생명, 음성, 노래, 이 모든 것들은 작가가 그린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신에게 초집중한 정도를 고려할 때 아마 작가는 소위 유체이탈을 했을 것이며 결국 신이 그의 손을 빌어서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메시지라고 말할 수 있다.

김남호 작품은 빛이 없는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미디어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불을 끄고 빛이 차단된 어두운 공간에서 전시하는 회화 작품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세계미술사에서 아직 그런 역사는 쓰인 적이 없다. 과학적인 기술을 접목한 컨템포러리 아트 작품 중에도 전기 장치를 이용하지 않는 한 빛이 없는 실내에서 볼 수 있는 회화 작품은 없다. 낮뿐만 아니라 밤이나 빛이 없는 공간에서도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은 현재 지구 위에서 김남호 작품이 유일하다. 그가 최초로 시작한 것이다. 지구 상의 모든 빛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떨까. 순간적으로 세계적인 정전 사태가 발생하거나 태양이 갑자기 잠깐 호흡을 멈추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오직 김남호 작품만이 빛을 발할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미술사에서 중요하다고 인정되어 높은 가치를 평가받는 예술가는 최초로 새롭게 시도한 작가이다. 물론 새롭다고 모두 예술이 될 수는 없다. 미학적으로 단숨에 관람자에게 미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면서 깊은 명상과 함께 영적인 치유를 통하여 신과 만날 수 있게 하는 김남호 작품은 분명 독창적이며 오래 두고 볼수록 깊어지는 맛이 있다.

김남호 작가의 신의 계시 작품 시리즈는 2005년 정도로 1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의 그의 작품은 마치 우주를 그려놓은 듯한 풍경과 같았다. 그것은 양자물리학적인 초미시적인 세계이기도 하고 우주적인 세계이기도 했다. 작품 안에는 무수히 많은 미립자와 미립자들의 끈 형태 (양자물리학의 끈이론)들이 유동하고 있으며 수많은 파동이 끝없이 연결되는 동적 상태를 보였다. 물론 이를 우주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주를 창조한 신이 우리 인간에게 그의 메시지와 사랑을 전하는 방법에 대해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의 말씀은 미립자와 미림자의 연결 파동을 타고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의 작품은 그 시기부터 낮에도 밤에도 볼 수 있었다. 그가 이렇게 작업을 하는 이유는 신은 우리를 낮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밤에도 사랑한다는, 즉 신은 시간을 구분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그 후 10여 년이 흐른 지금, 2016년 그의 작품들은 예전보다 훨씬 따뜻해졌으며 살아있으면서도 정적인 모습을 좀 더 많이 드러내고 있다. 과거의 작품은 작가가 그렸다면 지금의 작품은 작가를 이용하여 신이 그린 것은 아닐까? 그동안 대체 작가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작가의 개인사는 알 수 없지만 연륜이 쌓여온 만큼 작가는 더 많은 슬픔, 고독, 상처, 고통, 불안 등등 눈물 나는 세월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작품이 진정으로 따뜻한 경지, 사랑의 메시지로 가득한 경지에 이르는 되는 것은 언제나 따뜻하고 사랑만이 가득한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울어본 사람이 제대로 웃을 수 있고, 슬픔의 깊은 우물물을 마셔본 사람이 새벽이슬처럼 해맑을 수 있다. 작가가 신이라는 주제에 집중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의 삶을 개인사적인 차원에서 사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늘 타자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의 차원으로 자신의 사유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운명이 그렇다. 작품을 통하여 타인을 위해, 이웃을 위해, 인류를 위해 기도하는 것, 예술가로서 산다는 것은 그런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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